국립중앙박물관 102 신석기관 (토기 장신구 농경문화)

2016. 3. 4.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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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간에는 국립중앙박물관 "제102 신석기관" 을 소개하겠습니다. 신석기하면 농경문화의 시작이라고 배운 기억이 나는데요. 농경이 시작되면서 이를 보관하기 위한 토기가 개발되고 정착생활을 하게 되면서 인류사에 큰 전환점이 되는 시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신석기 시대의 특징 >>

 

신석기시대는 약 1만원년 전 빙하기가 끝나면서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여 토기와 간석기를 만들었던 시기를 말합니다. 신석기인들은 강가나 바닷가에 움집을 짓고 살며 고기잡이, 사냥, 식물 채집을 통해 먹을거리를 얻었다고 합니다. 가축을 기르기 시작하였으며, 농사도 부분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약 1만년 전 한반도에서는 날씨가 점차 따뜻해지면서 한반도의 지형, 동식물상은 현재와 비슷하게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추운 기후에 사는 대형동물은 사라지고 멧돼지, 사슴과 같이 작고 빠른 동물들이 나타났습니다. 다양한 자원을 효과적으로 운반, 보관하기 위해서 토기가 만들어지고, 빠른 동물을 잡기 위해 활과 화살을 사용했습니다. 한반도 신석기 시대 가장 이른 시기의 토기와 화살은 특이하게도 제주지역을 중심으로 발견되고 있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화살촉입니다. 석기시대이기 때문에 단단한 돌을 가공해서 만들어졌습니다. 

 

 

다양한 동물의 뼈들입니다. 이 시대에 야생동물을 사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바다로 간 사람들 >> 

 

신석기시대에는 빙하가 녹으면서 내륙 깊숙이 바닷물이 들어오고 곳곳에 강이 생겨났습니다. 신석기인들은 자원이 풍부한 강가나 바닷가에서 생활하면서 고기잡이를 위해 다양한 고이잡이방법과 도구를 만들어 냈습니다. 특히 배를 타고 먼 바다까지 나사서 작살과 이음낚시로 고래나 상어와 같은 큰 바다동물들을 잡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양한 종류의 이음날씨와 이음낚시 바늘입니다. 조금 엉성해 보이기는 하는데, 잘 잡혔는지는 모르겠군요. 

 

 

이음낚시의 사용법입니다. 낚시대 없이 손으로 실을 잡고 고기잡이를 한 것이로군요. 

 

 

고기잡이에 이용되었던 작살입니다. 돌로 만든 작살치고는 아주 섬세합니다. 

 

 

무슨 돌맹이, 아니면 바위?? 아닙다. 작살이 꽃힌 고래뼈입니다. 고래사냥을 했다는 얘기죠. 암튼 신기할 따름입니다.

 

<< 신석기 시대 원거리 교류 >>

 

신석기인들은 부족한 자원을 주변지역과의 교류를 통해 획득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원의 분포 상황과 이용방법, 제작기술 등의 다양한 정보가 교환되었습니다. 한반도의 신석기인들은 제주도는 물론 중국, 일본, 연해주까지도 접촉이 이루어졌는데, 특히 한반도 동남해안 지역과 일본 규슈지역 간에 거래가 활발했다고 하네요. 

 

 

신석기인들의 교류의 증거인 일본(조몬) 토기입니다. 

 

 

많은 지역들과의 교류가 있었음을 유물들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신석기인들이 사용했던 배입니다. 경남 창녕 비봉리에서 발굴된 것입니다. 8천년 전의 배라고 합니다. 

 

 

도토리나 가래와 같은 견과류를 가루로 만들거나, 곡물의 껍질을 벗기는데 사용되었던 갈판과 갈돌입니다. 이게 발전해서 멧돌이 되었겠죠. 

 

 

<< 식물채집과 농사짓기 >>

 

 

식물채집은 신석기시대 중요한 생계수단이었습니다. 도토리, 가래, 살구 등 다양한 야생식물을 먹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신석기인들은 점차 일궈 조나 기장 등을 재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식물의 채집에 사용되었던 뒤지개입니다. 괭이라고 생각하시면 맞을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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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석기 시대 _ 옷짓기 >>

 

신석기시대 옷짓기와 관련된 유물로는 가락바퀴, 바늘들이 있습니다. 가락바퀴는 실을 꼬아 뽑는 도구입니다.  

 

 

가락바퀴의 모습입니다. 용을 대충 이해하시겠죠.

 

 

<< 신석기시대 _ 토기의 등장 >>

 

토기는 1만년 전 인간이 진흙을 구우면 단단해진다는 화학적 변화를 깨닫고 만든 최초의 발명품입니다. 토기는 흙으로 빚은 그릇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데, 끊이고 데치고 삶는 등 다양한 조리방법이 가능해져 먹을 수 있ㄴ느 재료가 많아지고 보관, 운반도 이전보다 용이해졌습니다. 

 

 

 

신석기 유적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빗날무늬토기. 아래 설명에는 서울 암사동에서 발견된 "바리" 라고 적혀 있네요. 신석기 시대의 토기들은 지역에 따른 조금씩 다른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한반도 동북지역과 중서부지역 바리입니다.

 

 

 

중동부지역의 바리와 남해안의 바리토기..

 

 

 

마지막으로 남부내륙 지역의 바리.. 제 눈에 거의 비슷한 거 같네요. 막눈이라. 

 

 

 

<< 신석기시대 _ 장례문화 >>

 

무덤은 죽음에 대한 신석기인들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신석기시대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무덤이 만들어졌습니다. 구덩이를 파고 시신을 묻는 경우가 많으나, 동굴을 무덤으로 이용하거나 뼈만 추려 토기 등에 넣기도 하였습니다. 신석기인들은 꾸미개로 죽은 이를 치장하고 토기, 석기 등 사후 생활에 필요할 것으로 짐작되는 생활용품을 넣었습니다. 

 

 

부산 가덕도 유적 41호 무덤에서는 팔다리를 굽혀묻기한 인골이 발견되었습니다. 무덤의 주인공은 키 160cm를 전후한 40대 남성으로 X자 모양으로 놓인 두 팔에 투박조개로 만든 팔찌를 찬채로 발견되었습니다. 

 

 

장례용으로 사용되었던 독널입니다. 경남 진주 상촌리에서 출토되었습니다.

 

 

<< 신석기시대 장식과 예술 >> 

 

농경문화 등으로 생활이 안정되면서 신석기인들은 팔찌나 목걸이, 귀결이를 만들어 자신을 단정했습니다. 사람의 얼굴, 여성, 동물, 배 모양을 띤 예술품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꾸미개나 예술품은 신앙과 의례, 사회적 신분 등을 나타내는 성격이 강했습니다. 지금이나 그때나 별반 차이가 없네요.

 

 

동물이빨 발찌인데요. 국립진주박물관에 출품되어서 지금은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다양한 모양의 장신구와 노래개들.. 조개나 뼈 등을 이용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중앙에 큰 조개에 구멍을 뚫어 사람 얼굴을 표현한 것이 재미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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