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104 부여삼한관(부여 옥저 동예 삼한의역사)

2016. 6. 4.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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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의 유물에 이어 국립중앙박물관 제104관 부여 삼한 전시관의 유물들과 이 시대의 역사흐름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고조선이 멸망하고 만주와 한반도에 들어서 부여와 옥저, 동예와 삼한세력이 활동하던 시기는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가 병존하던 시기로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고구려와 백제, 신라가 서로 경쟁하던 삼국시대가 되기 전에는 여러 국가들이 한반도와 만주지역에서 활동을 하였답니다. 

 

 

부여 삼한시대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고조선 멸망 후 만주지역에서는 부여와 고구려, 한반도 동북지역에는 옥저, 동예, 중남부지역에는 마한, 진한, 변한 등의 삼한이 있었습니다. 부여와 고구려는 주변지역과 경쟁을 통해서 일찍이 고대국가로 성장하였구요. 옥저와 동예는 고구려 영향 아래 있었으며, 삼한은 점차 백제, 신라, 가야로 통합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본격적인 철기문화시대를 맞아 쇠로 농기구와 무기를 만들면서 국가의 지배질서도 빠르게 확립되었던 시기라고 하네요. 

 

 

부여삼한 전시관에는 다양한 형태의 철기도구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철기문화가 널리 퍼지고 제작기술이 발달하면서 무기는 물론 농기구도 철기화되기 시작하였는데요. 이로써 수확량이 늘어나고 강력한 세력을 가진 지배자가 고대국가의 형태로 발전하게 됩니다. 

 

 

본격적인 철기시대를 맞이하였다고 하지만, 여전히 청동기를 사용하였는데요. 청동거울과 한국형 동검을 통해서 이 사실을 확일한 수 있습니다. 청동기는 생산량에는 한계가 있지만, 제작방법이 철기에 비해서 쉽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전남 함평에서 출토된 청동제 방울입니다. 청동기 유물을 봐도 이전 시기에 비해서 아주 정교해 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부여 

 

부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부여의 역사는 고조선이 멸망할 당시에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 후 5세기까지 존속하였던 고대국가인데요. 중국의 지린성 일대에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중앙은 왕이 지배하고, 지방은 마가, 우가, 저가, 구가 등의 관리가 통치하였다고 합니다. 농업과 목축을 생업을 하고, 말과 구슬, 모피 등의 특산물이 있습니다. 고구려의 주몽과 백제의 온조 역시 부여 출신으로 한반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답니다. 

 

 

부여의 철기문화와 정교하게 가공된 금제 귀걸이를 통해 부여의 우수한 문화수준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2. 옥저와 동예

 

옥저는 러시아 연해주와 함경도 일대에서 활동하던 세력으로 읍락의 군장들이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며 통일된 정치체를 이루지 못하고 고구려의 견제와 지배를 받았다고 합니다. 동예는 한반도 동북부와 강원도 일대에서 활동하던 세력으로 옥저와 비슷한 사회문화로 산과 물을 경계로 영역을 엄격하게 지켰으며, 이를 어겼을 때는 노예나 동물로 변상하는 제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3. 한사군 

 

위만조선이 중국의 한나라에 의해 멸망하고, 한나라는 낙랑, 임둔, 진번, 현도 등 4개 군현을 설치하여 요동과 한반도 북부를 통치하였는데요. 그 중에서 가장 강성했던 낙랑군의 유적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낙랑의 대표 무덤인 석암리 9호분에서 출토된 유물을 통해서 당시 문화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청동거울, 장신구, 칠기 등 중국에서 수입된 문물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옛 사람들은 옥에 신성한 힘이 깃들여있다고 믿었는데요. 함옥의 매미모양은 부활을 상징한다고 하네요. 그래서 망자의 가슴에 옥을 올린 후 매장했습니다. 그리고 석암리 9호분에서 많은 청동그릇들이 출토되었습니다. 청동제작기술이 더욱 더 발전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향로와 화로, 항아리가 아주 정교하게 제작되었네요. 

 

 

낙랑고분에는 식기류를 비롯하여 무구류 등 다수의 칠제품이 부장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연대와 제작자가 새겨져 있어서 당시의 제작상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팔찌와 반지는 출토상황으로 보아 남녀 구분 없이 착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하네요. 

 

 

공모양의 상다리 장식이라고 하는데요. 곰보다는 생쥐를 닮은 거 같지 않으세요?? 나무로 만들어서 칠을 한 것입니다. 

 

 

4. 마한 

 

마한은 한반도 중부 일대와 호서지방, 호남지방에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 후 4세기 중반에 존재한 소국연맹체입니다. 목지국이라는 나라를 중심으로 54개 소국 연맹체로 구성된 마한은 중부지방에서는 중도유형문화, 호서지방에서는 방형 집자리와 주구토광묘, 호남지방에서는 주구묘와 독널무덤 형식을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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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진한 

 

진하는 기원 전후부터 경주와 대구 지역을 중심을 발전한 세력인데요. 사로국에 의해 통합되어 신라로 발전하였습니다. 고고학적으로 널무덤과 돌널무덤을 만들어 쓰고 주머니호와 쇠뿔손잡이 항아리, 다양한 철기가 부장되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6. 변한 

 

지금의 김해 지방에 있던 구야국 등 12개의 소국으로 이뤄진 변한은 이후에 가야연맹체로 발전하게 되는데요. 중국의 군현과 왜에 철을 수출한 철 산지로 유명했답니다. 

 

 

변한을 대표하는 다호리 유적에서는 수장의 무덤을 만들어서 뽕나무로 속을 파서 만든 관에 시신을 안치하고, 관 아래에 부장 구덩이를 파고 바구니에 넣어 매장하는 풍속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부장품으로 철제 도끼, 낫, 괭이, 따비 등의 농기구와 창, 칼, 화살과 같은 무기, 제사에 사용했던 각종 칠기 그릇들과 제사에 사용되었던 음식들을 함께 묻어서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변한 사람들은 뽕나무를 파서 관을 만들어서 매장을 했습니다. 아래 사진이 다호리 출토 당시 목관을 재현을 모습입니다. 

 

 

삼한의 대외교류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삼한은 한반도를 벗어나 중원, 오르도스, 일본과 교류하였는데요. 변한의 경우 철을 낙랑과 일본에 수출하였고, 남부빙의 여러 유적에서 중국 및 일본의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습니다. 청동세발솥과 거울, 동전은 중국과의 교류 흔적이고, 야요이토기, 청동 투겁창 등은 일본과의 교류 흔적입니다. 

 

 

 

 

삼한 시대에는 문자와 도량형을 수용했던 시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붓과 손칼이 창원 다호리 1호 무덤에서 출토되었습니다. 청동고리는 일종의 저울추로 문자와 함께 당시 지배층이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잇습니다. 

 

 

삼한시대에는 종래의 민무늬토기가 계속 사용되는 한편 새로이 연질토기와 와질토기가 등장하였는데요. 와질토기에는 뒤이어 등장한 경질토기는 밀폐된 굴가마에서 높은 온도로 구워서 회청색을 띠며 단단하여 실용성이 높았다고 합니다. 

 

경주 덕천리와 경산 임당동에서 출토된 오리모양토기가 너무 재미있네요.

 

 

국립중앙박물관 104 부여삼한관에서 삼국시대 이전에 한반도와 만주지역에서 활약했던 부여와 삼한의 문화와 유물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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