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105 고구려관 (금관 철갑기병 고분벽화)

2016. 7. 4.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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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105 고구려관"입니다. 고구려는 강대한 힘으로 넓은 한반도와 만주를 지배했던 고대국가로 우리 민족의 자부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 같아요. 특히 광개토태왕은 모르면 우리나라 사람이 아닐 거예요. 하지만, 고구려의 주활동 무대가 지금의 북한과 만주지역이라서 그런지 전시된 유물의 수가 많지만 않더군요. 

 

 

고구려 문화의 특징

 

고구려는 압록강 유역에서 일어나 점차 주변지역을 아우르면서 삼국 중 가장 먼저 고대국가 체제를 갖추었습니다. 313년 평양지역의 낙랑군을 몰아내고, 북으로는 중국 랴오허 강에서 지린성 쑹호 강에 이르고, 남으로는 한반도 중부까지 영영을 넓혀 동아시아의 강자가 되었습니다. 고구려는 고유문화를 유지하면서 중국와 서역, 북방의 외래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역동적이고 실용적인 문화를 만들어냈는데요. 고구려 문화의 국제성과 선진성은 천문, 지리, 문화, 음악, 무용, 공예 등 여러 분야에서 두드러집니다.

 

고구려 문화의 특징은 만주의 환런, 지안 일대와 평양 등 고구려 옛도읍지를 중심으로 남아있는 성, 무덤, 궁궐터, 절터 그리고 여기에서 출토된 토기, 철기, 꾸미개 등의 유물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고구려 문화는 백제, 신라, 가야, 왜(일본)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통일신라와 발해로 이어졌습니다.

 

 

고구려의 금동관입니다.  고구려 사람들은 신분에 따라 다른 모양의 관을 착용했습니다. 고구려의 관인은 정품이나 소골이라고 불리는 고깔모양의 관에 새깃 2개를 꽂고 금테나 은테를 섞어 둘러서 사용했습니다. 

 

 

고구려의 귀걸이입니다. 고구려 5~6세기 때의 것으로 서울 능동에서 출토되었습니다. 

 

 

<< 고구려의 성 >>

 

고구려는 도성과 주요 교통로에 수백개의 성을 축조하였는데요. 고구려인은 절벽과 가파른 산등성이 등 험준한 지세를 이용해 산성을 쌓아 비교적 적은 힘으로 방어력을 최대로 증대시켰습니다. 산성과 대비는 평지성은 주로 도성지역에 축조되었는데, 군사적, 방어적 성격이 강한 산성에 비해 평지성은 거주기능이 뛰어나 다양한 정치적, 행정적 기능을 수행하기에 유리했습니다. 고구려의 도성은 평지성과 산성이 짝을 이루도록 설계되어 평시에는 평지성에 거주하고, 전시에는 산성으로 옮겨 방어했습니다. 

 

 

<< 고구려의 무덤 >>

 

고구려무덤은 돌무지무덤과 흙무지무덤으로 크게 분류됩니다. 돌무지무덤은 알록강 유역에 집중되어 있는 고구려 전기 무덤형식으로 지상에 돌을 깔고 그 위에 주검을 안치한 후 다시 돌을 덮어 만들었으며, 무기단식에서 기단식, 계단식으로 변천하였습니다. 지안의 장군총, 태왕릉, 천추총 등은 고구려 돌무지 무덤의 가장 발전된 단계를 보여주는 예입니다.

 

흙무지무덤은 지하, 반지하, 지상에 널길이 있는 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흙을 덮어 만든 형식으로 돌방의 수, 천장의 짜임, 널길의 위치 등에서 다양한 형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고구려에서는 벽화를그린 돌방무덤이 발전하였습니다. 무덤의 벽화는 당시의 생활풍속, 장식무늬, 사신도 등 다양한 주레를 담고 있습니다. 고구려시대의 다양한 모양을 한 수막새입니다. 수막새는 기와집에서 기와끝을 장식하는 기와를 말하죠. 짐승얼굴문양, 연화문양 등이 있네요.

 

 

지린 성 지안의 태왕릉과 천추총에서 출토왼 벽돌입니다. 벽돌에 글을 새겨놓은 것이 아주 특이하죠. 태왕릉이라는 이름이 붙고 광개토태왕의 무덤으로 추정하는 이유도 태왕릉비와 이 벽돌에서 추정한 것이라고 합니다. 

 

말 탄 사람이 그려진 벽화입니다. 1913년 평안남도의 쌍영총을 조사할 때 수습된 벽화조각입니다. 인물 행렬도의 일부라고 하네요. 말을 타고 달리는 사람의 모습에서 당시 고려인의 옷치장과 말갖춤(말장식) 등을 엿볼 수 있습니다.

 

 

봉황모양에 새겨진 고구려 꾸미개 

 

 

<< 고구려 무덤벽화 모사도 >>

 

고구려관은 지리적인 조건으로 인해서 신라와 백제에 비해 유물이 적은 편입니다. 하지만 고구려무덤벽화 모사도와 영상관을 마련하고 있어 부족한 부분을 메우고 있습니다. 

 

 

고구려 무덤벽화 모사도에서는 북한의 남포시 강서구역 삼묘리에 있는 강서대묘의 무덤방 내부에 그려진 사신도로 유명합니다. 사신도는 좌청룡우백호, 북주작남현무를 말합니다. 강서대묘의 무덤방은 사신도뿐만 아니라 천장에도 다양한 벽화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먼저 청룡과 현무의 모습!

 

 

 

그리고 주작과 백호의 모습~

 

 

백호의 모습.. 청룡과 거의 구분이 되지 않네요. 청룡, 백호, 주작, 현무로 이루어진 사신은 대표적인 상상 속 신수로서 동서남북 4방향과 봄여름가을겨울 4계절, 음양조화, 벽사 등을 뜻하네요.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 무덤벽화에 가장 먼저 나타납니다. 조선왕릉에서도 사신도로 그려져 있다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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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의 철갑기병 >>

 

고구려는 강력한 철갑기병으로 유명합니다. 벽화를 통해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구려는 영토를 개척하면서 강력한 국가로 성장하게 됩니다. 군대는 육군과 수군으로 구성되며, 육군은 기병과 보병으로, 또 기병은 중장기병과 경기병으로 구분되었습니다. 고구려 동천왕 시대에 "철기 5천"이라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로 기마전술에 의한 전투가 일반화 된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고구려의 말갖춤 즉 말장식들..

 

 

고구려의 남진

 

고구려는 475년 백제의 수도 한성을 공격해 한강 유역을 차지하게 됩니다. 임진강 유역과 양주분지, 한강 하류역, 금강유역에서는 고구려의 남진을 보여주는 유적이 많이 남겨져 있습니다. 특히 아차산과 용마산 일대 보루들에서는 온돌시설이 있는 건물지와 저수시설, 간이 대장간, 방앗간 시설 등 다양한 유물과 발견되었습니다.

 

호우 글자가 있는 청동그릇입니다. 경주 호우총에서 출토되었다고 하네요. 신라사신이 고구려에 왔다고 가지고 갔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고구려의 네 귀 달린 항아리입니다. 경주의 금관총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네요. 서로 교역을 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하는 유물입니다.

 

 

고구려의 못신, 실제로 실었다고 보다는 의례용이나 껴묻거리, 즉 무덤에 시신과 같이 넣었던 물건으로 추정됩니다.

 

 

고구려의 불교

 

고구려의 불교는 소수림왕 2년, 서기 372년 중국 전진왕이 사신과 순도 스님을 시켜 불상과 경문을 보내면서 전래되었습니다. 일찍부터 왕실과 국가의 후원을 받으며 사찰이 건립되고 불상이 조성되었습니다. 

 

 

고구려 시대의 불상은 중국의 남북조시대 불상의 영향을 받아 얼굴이 길고 옷자락이 몸 양 옆으로 힘차게 퍼진 특징을 보여줍니다. 고구려인의 불교적인 세계관은 무덤벽화에서도 자주 표현됩니다. 

 

 

고구려인의 일상

 

고구려의 성 내부에는 여러 건물과 정비된 도로 등 다양한 시설이 있었습. 귀족의 집은 사랑채와 안채로 이루어지며, 마구간, 차고, 부엌, 다락창고, 방앗간, 고깃가 등의 부속시설과 잘 꾸며진 정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디딜방아로 곡식을 찣고, 가루로 내어 시루에 쪄 먹었으며, 아래층에 기둥만 있고 본체가 윗에 있는 고상식 구조의 창고에 곡식을 보관하였습니다. 

 

 

고구려 시대의 철제아궁이.. 길이가 20cm 정도 되는 거 같더군요. 

 

 

고구려의 집모양 토기입니다.

 

 

고구려 영상관입니다. 영상실에서는 고구려 고분벽화 12분, 고구려, 백제, 신라고분 20분으로 상영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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