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107 가야관 (토기 철갑기병 철기문화)

2015. 9. 4.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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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철기문명을 발전시킨 한반도 남부의 고대세력 가아편, 국립중앙박물관 "제107 가야관" 입니다. 지금의 경상도 지역이 주활동 무대였던 고대 국가 "가야" , 강력한 철기문화로 수세기동안 유지되었던 가야문화의 특징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가야의 역사 >>

 

먼저 가야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의하면 가야는 기원후 42년 수로왕에 의해 김해지방에서 건국되었고 합니다. 초기에는 이 지역의 풍부한 철기를 기반으로 금관가야와 아라가야가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였는데, 특히 금관가야는 바닷길을 통해 중국, 왜 등과 철을 기반으로 한 국제교역으로 부를 축적하였다고 하네요. 5세기와 6세기에 접어들면서 대가야와 아라가야를 중심으로 큰 세력을 형성하게 되는데, "대왕" 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토기와 화려한 금제품 그리고 대형 봉토분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신리, 백제와 힘을 겨룰만큼 강한 세력이었음 짐작할 수 있습니다. 

 

 

<< 가야의 건국신화 >>

 

가야의 건국신화에 대해서 알아볼까요. 가야의 건국시대는 금관가야와 대가야의 두가지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먼저 금관가야의 건국신화는 하늘로부터 금빛 상자에 담긴 6개의 황금알이 구지봉에 내려왔는데, 10일 후 알에서 여섯 아이가 태어나고 그 중 가장 먼저 태어난 아이가 수로이며 금관가야의 왕이 되었다고 합니다. 나머지 다섯 사람들도 각각 다섯 가야의 임금이 되었구요.  다음운 대가야의 건국신화입니다. 가야산신 정견모주가 천신에게 감응되어 두 아이를 낳았는데 이들은 각각 대가야의 왕과 금관국의 왕이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다음은 다양의 영토입니다. 주로 경상북도 남부와 경상남도 일대가 주활동 무대였습니다. 

 

 

가야의 토기인데요. 가야는 높은 온도의 밀폐 가마, 고속회전 물레 등 발달된 제작기술로 회청색의 아주 단단한 토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가야 토기는 곡선적인 다리를 가진 굽다리접시와 다양한 형태의 그릇받침이 특징적인데 높은 온도에서 구워서 대체로 밝은 회청색을 띠게 된다고 하네요. 3세기 후반 김해일대에 있었던 금관가야에서는 물결무늬가 새겨진 화로 모양의 그릇받침과 입술이 바깥으로 꺾인 굽다리접시, 그리고 두 귀가 붙은 항아리가 등장하게 됩니다. 

 

 

 

짧은 목 항아리라와 그릇받침입니다. 그릇받침이 아주 특이한데요. 사람이 앉아서 먹기 편하게 하기 위해서 높게 만들어진게 아닐까요??? 일반 서민용은 아닐 거 같네요.

 

 

쇠뿔모양 손잡이가 달린 굽다리 토기입니다. 

 

 

가야의 철제문화

 

다음은 가야하면 철기문화가 발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야는 풍부한 절자원과 우수한 철기제작기술을 바탕으로 그 세력을 확대할 수 있었습니다. 무덤에서 칼과 창 같은 철제무기가 많이 출토되는 데 특히 용과 봉황 등을 장식한 고리자루칼은 지배자의 신분과 정치체 사이의 결속을 다지는 상징물로 추정됩니다. 

 

 

철제도구를 만들기 위해서 사용되는 도구와 숫돌, 재료가 되는 철광석, 그리고 쇠를 녹이기 위해 사용되었던 송풍관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철제 장검이네요. 중간에 금으로 장식되어 것으로 보아 지배자의 장식용으로 추정됩니다. 

 

 

가야의 말장식입니다. 모형말을 이용해서 그 용도를 확인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말의 머리를 보호하는 말투구입니다. 말이 조금 불편할 거 같지만, 칼이나 화살에 맞는 거보단 낫겠죠^^

 

 

가야시대의 철제갑옷입니다. 통갑옷이죠. TV에 자주 나오는 중세시대의 유럽기사들의 갑옷과 비슷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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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의 토기 >>

 

순서가 조금 이상하기는 하지만 다시 가야 토기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지금의 고령과 합천일대에서 있었던 대가야에서는 얕은 접시에 작은 네모 투장이 뚫린 굽다리접시와 잘록한 목에 뚜껑받이턱이 있는 항아리, 몸통에 긴 띠를 세로로 장식한 원통형 그릇받침 등이 성행했다고 하네요. 진주와 고성일대에 있었던 소가야에서는 납작한 몸체에 긴 네모꼴 굽구멍이 뚫린 굽다리 접시와 아가리 끝이 수평을 이루며 퍼진 항아리가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특히 5세기 아라가야에서는 불꽃모양의 투창을 가진 굽다리접시가 출현하였습니다.

 

 

 

가야의 장신구

 

가야 사람들이 즐겨 착용한 장신구는 관, 귀걸이, 목걸이, 팔찌, 반지 등이었습니다. 이 중 관은 관테와 풀꽃모양 세움장식이 있는 형태입니다. 귀걸이는 고리 하나로만 이루어진 것과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 것이 출토되었습니다. 목걸이는 주로 유리, 수정, 마노, 호박, 천하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노리개의 경우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주술적인 힘과 사회적 권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주고 있어, 고대인들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경남 창녕과 경북 성주와 고령에서 출토된 가야시대의 금관과 금동관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신라금관보다는 수수한 편이죠. 

 

 

 

경북 고령과 경남의령, 합청에서 출토된 금귀걸이입니다. 

 

 

<< 가야의 상형토기 >

 

상형토기는 사람이나 동물 또는물건의 모양을 본떠서 만든 토기를 말합니다. 이 중에서 속이 비어 있거나 뿔잔 등이 붙어 있어 주전자나 잔과 같은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진 것도 있습니다. 특히 배, 수레, 집, 신말, 방울 등의 모양을 지난 토기가 많은데,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가야의 상형토기는 대부분 무덤에서 출토되고 있기 때문에 장송의례에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사슴모양과 오리모양 상형토기.

 

 

 

 

수레 모양 상형토기. 아주 특이하네요. 

 

 

가야의 대외교류

 

가야는 바다에 접해 있다는 지리적인 이점과 풍부한 철자원을 바탕으로 중국, 북방, 왜뿐만 아니라 서역과도 교류하였습니다. 최근 백제지역에서 많이 출토되던 닭머리모양 주둥이를 가진 청자호가 남원지역 가야무덤에서 확인되어 중국의 북조뿐만 아니라 남조와도 교류하였음을 할 수 있습니다. 청동솥과 청동대야는 북방과의 교류를 보여주며, 방패꾸미개, 원통모양청동기, 옥제화살촉과 갈색토기는 왜와의 교류를 보여 줍니다. 

 

 

 

왜, 즉 일본과의 교역을 말해주는 방패꾸미개입니다. 

 

 

가야 사람들의 생활

 

가야 사람들의 생활을 알려주는 자료는 많지 않으며, 무덤이나 생활유적에서 발견되는 유기물이나 토기 등으로 일부가 알려져 있을 뿐입니다. 가야사람들은 민물고기, 고둥, 상어, 참다랑어, 닭 등의 고기류와 팥, 밀, 밤, 복숭아, 호두 등의 곡신과 열매를 먹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가야무덤에서 출토된 짚신모양토기, 바퀴모양토기와 집모양토기 등을 통해 가야 사람들의 생활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야인들의 거주지를 짐작하게 해주는 집모양토기입니다. 지금처럼 온돌을 이용했던 건 아닌 거 같죠. 온돌문화는 북방 즉 고구려문화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부산 동례에서 출토된 집신모양 토기입니다. 

 

가야에서 신라로! 경상북도 성주 지역에 있던 성산가야와 경상남도 창녕지역에 있었던 비사벌(비사가야)는 금관가야나 대가야처럼 6세기 대까지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이른 시기부터 신라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성주 성산동이나 창녕 교통 등 주요 고분에서 출토되는 금공품이나 마구, 칼 등은 신라식이 많지만, 토기문화는 여전히 지역색을 보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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