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왕의 직무공간 외전 (홍화문,명정문,문정전)

2016. 6. 6.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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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조선시대 궁궐이었던 창경덕을 대략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창경국을 직무공간인 외전과 생활공간인 내전, 그리고 휴식공간인 후원으로 구분해서 자세히 알아보려고 하는데요. 첫번째 시간으로 국왕이 대외적인 행사를 하거나 직무를 보던 구간으로 의례공간인 홍화문, 명정문, 명정전과 직무를 보던 편전인 문정전, 지금은 관천대가 남아있는 관리들의 업무공간인 괄내각사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창경궁의 정문은 홍화문은 광해군 때 지어진 건물로 역사가 아주 오래된 건물입니다. 복층구조로 되어 있어서 궁궐의 위험을 높이고 있는데요.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홍화문이라는 이름답게 단장이 아주 예쁘네요. 

 

 

홍화문에서 정전인 명정전으로 들어가면 폭이 넓은 돌다리가 보이는데요. 옥천교라고 합니다. 정문인 홍화문과 명정전으로 들어가는 명정문의 중간에 있는 넓은 이유는 왕이 가마를 다니기 때문인데요. 옛날 임금님은 집안에서도 가마를 타고 다니셨군요. 

 

 

옥천교를 지나면 정전 명정전으로 들어서는 마지막 문인 명정문이 나옵니다. 보통 왕이 있는 궁궐에서 정전으로 들어가는 문은 3개인데 비해 창경궁은 홍화전과 명정문밖에 없는 것으로 보아 다른 궁궐보다는 격이 조금 낮은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조선시대에는 창덕궁과 창경궁이 구분없이 사용되었다고 하니 의문이 풀리기는 합니다. 

 

명정문으로 들어가면 정전인 명정전이 관람객을 반기는데요. 경복궁의 근정전이나 창덕궁의 인정전처럼 규모를 크지 않지만, 주위에 건물들이 많이 있어서 뒤를 받쳐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렇게 작다고는 생각되지 않았어요. 

 

 

명정전 내부는 임금의 의자인 어좌와 일월오악도병문이 있고, 천장에는 봉황무늬가 새겨져 있습니다. 특히 명정전은 단청이 바래서 조금 어두운 분위기가 나는데요. 세월의 느낄 수가 있었답니다. 왜 단청을 새로 하지 않는지 모르겠군요. 그대로 보전하는 것도 좋지만, 오래오래 보존하기 위해서 잘 가꾸는 것도 중요할텐데 말이죠. 

 

 

명정전은 광해군 이래 400년간 이곳을 지키고 있는데요. 그 가치를 인정받아 국보로 지정되어 있고, 앞 마당인 조정을 둘러싸고 있는 회랑과 명정문, 홍화문은 보물로 보호되고 있답니다.

 

 

완벽히 다듬지 않은 박석으로 되어 있는 조정과 명정전, 문정전의 보입입니다. 걷을 때 조심조심하기 위해서 박석을 깔았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궁궐은 보통 정전을 중심으로 했을 때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데요. 특이하게도 창경궁만이 동쪽을 바라고 있습니다. 창덕궁과 사이에 있는 산줄기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렇게 지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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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조정을 둘러싸고 있는 회랑입니다. 행각이라고도 하는데요. 엄밀히 말하면 회랑과 행각은 구분해야 합니다. 회랑은 아래 보이는 것처럼 복도로 만들어진 지붕이 있는 건물이고, 행각은 직무를 보거나 보관장소로 사용할 수 있게 칸칸이 방을 만든 길다란 집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바닥은 모래가 아니라 석회를 섞어서 단단하게 만든 거 같더라구요. 

 

 

명정전을 지나 사도세자의 죽음과 깊은 관련이 있는 문정전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명정전과 문정전은 지붕이 있는 복도로 연결이 되어 있는데요. 남대문에 불을 낸 할아버지가 그 전에 명정전에도 불을 냈는데, 화재로 문정전과 명전정이 소실할뻔한 일이 있었다고 하네요. 다행히 일찍 발각이 되어 문정전문만 조금 훼손이 되었는데요. 이렇게 연결이 되어 있어서 두 건물이 함께 사라질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니 아찔한 기분이 들었어요.

 

 

왕가의 신주나 왕이 직무를 보던 편전으로 사용되었던 문정전입니다. 중심건물인 명정전과 비슷한 높이를 하고 있는 독특한 구조입니다. 보통 정전이 가장 크고 높게 만들기 마련인데요. 400년 전에 지은 명정전보다 후대에 지은 명정전을 이렇게 웅장하게 지은 이유가 따로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명정전은 2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영조의 둘째 아들인 사도세자가 8일 동안 뒤주에 갖혀 죽은 곳이 바로 문정전 앞인데요. 한여름 탈수현상으로 죽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합니다. 한 여름에 물 한모금 주지 않고 세자를 죽이다니 영조도 참 무서운 임금이었군요. 사도세자가 죽은 후 후회도 많이 했다고 하지요. 한편 창경궁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가장 많이 훼손된 궁궐로 알려져 있는데요. 순종임금을 위로한다는 명목 하에 아예 공원으로 만들어서 이름도 창경원으로 부르게 되죠. 1980년대에 들어서 다시 지금의 모습을 찾게 되었답니다. 문정전에는 왕이 신하와 함께 국사를 논하던 어전회의공간이 나옵니다. 어좌가 중심에 있고 앞에선 신하들이 서로 바로 바고 있었겠죠. 전하~~

 

 

문정전을 지나 내전쪽으로 향하면 명정전 바로 뒷쪽에 숭문당이 서 있습니다. 전과 당이라는 건물이름에 구분하여 부르는데요. 규모면이나 격식면에서 전이 더 높고 당은 한단계 아래 건물입니다. 숭문당은 임금이 공부를 하던 곳인데요. 조선시대 임금들은 아침, 점심, 저녁에 매일같이 열심히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물론 열심히 하는 임금만 그랬겠죠. 숭문당 옆쪽에는 창경궁의 외전과 내전을 구분하는 빈양문이 있습니다. 이쪽으로 들어서면 왕과 왕비, 세자가 기거하던 생활공간이 내전이 나옵니다. 내전은 다음 시간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관천대의 모습입니다. 천문관측시설로서 첨성대라고 불린다고 하는데요. 경주의 첨성대가 생각나는군요.

 

 

다시 조정으로 나섰습니다. 조정대신들이 이곳에 모여서 왕에게 하례를 했겠죠. 동반 서반으로 해서 9개의 품계석이 어도를 중심으로 서 있습니다. 야간개방행사를 맞아 중간중간에 등이 준비되어 있는데요. 밤에 오면 야경이 아주 멋있을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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